<이제 그만 끝낼까 해>(2020) - 찰리 카우프만
- 연출 면에서 찰리 카우프만이 감독한 <시네도키, 뉴욕>과 그가 각본을 맡은 <이터널 선샤인>을 합쳐놓은 것 같은 작품. 시간이나 인물의 심상처럼 눈에 보이지 않은 것들을 각본 속에서 낚아채어 공간 속으로 옮겨놓는 카우프만의 섬세한 손길이 여느 때보다도 더욱 강렬하게 느껴집니다. <이터널 선샤인>은 미셸 공드리보다는 찰리 카우프만의 힘이 더욱 큰 작품이었다는 확신이 더욱 커집니다.
- 이 복잡한 영화의 플롯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지만, 학교 청소부의 내면을 영화화했다는 것이 내게는 가장 그럴듯한 설명처럼 들립니다. 영화의 주인공들은 <아이덴티티>에서 그랬듯, 자신이 심상 속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입니다.
- 학교 청소부는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나가는 학생들을 코앞에 둔 채로, 보잘 것 없었던 삶에 대해 회한하는 인물입니다. 빗자루질, 물걸레질을 하는 그의 옆으로 학생들은 멋지게 자신의 삶을 그려나갑니다.
- 그저 연명할 뿐인 삶이 가치가 있을까요? 그는 이런 삶을 ‘이제 그만 끝낼까’합니다. 그러나 그 전에 그는 마지막으로 보잘 것 없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로 합니다.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, 약간의 각색을 덧붙여서요. 점심을 먹으며 감상했던 영화, 무던하게 살아온 과거의 자신과 복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지식들로 그는 하나의 이야기를 기워냅니다.
-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을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마 등장인물들의 정체성일 것입니다. 등장인물들은 아주 기본적인 자신의 신상조차 자꾸만 번복합니다. 심지어 주인공 여자의 이름은 끝까지 제대로 등장하지도 않습니다.
- 분명 재미있게 본 영화는 아닌데 자꾸만 머릿속에 맴도네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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